순례길 13

[Buen camino] 나의 피로회복제 코카콜라, 에스프레소

2009.10.31 팜플로냐-레이나 : 23.5km 오늘은 페르돈 고개를 넘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오늘의 날씨는 덥다. 수확을 다 끝낸 밭은 황토빛 일색이고 하늘은 맑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눈인사를 나눈 순례자와 말을 걸어온다. 호기심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이 길을 걷는 스페인 사람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동양 여자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 까지 왔는지. 너는 이 길을 왜 걷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오지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걷고 싶어서라는 늘 하던 말 대신 오늘은 다른 말을 해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봤어. 그리고 이곳으로 왔지." 한 달의 휴가를 내고 생활하기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서 이곳으로 온 이유? '그냥' 대신에 이유를 꼭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700유로..

[Buen camino] 이것이 진짜 여행이렸다

2009.10.30 수비리-팜플로냐 : 21km 드디어 처음 제대로 걸어보는 날이다. 공립 알베르게 대산 10유로나 하는 사설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만족도는 높았다. 토마토 한 알과 카페 솔로 그랑데 한 잔으로 가볍게 시작. 아침에는 이슬에 젖기 때문에 바람막이용 점퍼를 입어주어야 한다. 핑크 자켓은 항공좌석에서 놓고 내리고 내게 남은 유일한 바람막이용 점퍼는 여박 점퍼. 주황색 옷은 어디에다 내어놓아도 튄다. 산에서 실종되어도 가장먼저 발견될듯. 인적 없는 숲길, 아침이슬에 옷깃을 스키며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따라온다. 야옹대는 폼이 영 애태우는 걸 보니 녀석이 오랫동안 굶었던 것 같다. 갖고 있던 바게트 빵을 좀 찢어서 던져 주었다. 이틀 전 사두고 거의 잊었던 ..

[Buen camino] 산티아고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2009.10.29 생 장 피드 포드 - 수비리 : 21km 어제의 약속대로 짐을 부치기 위해 마리아를 찾았다. 책, 배낭커버, 화장수, 여분의 바지도 1킬로가 나가길래 뺐다. 양말도 한켤래로 빨아신기로 했다. 그렇게 6킬로 감량에 성공. 그럼에도 저울에 잰 배낭무게는 14킬로...다들 혀를 내두른다. 카메라 2kg, 침낭2kg, 노트북 1.5kg, 그들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아답터 무게가 1kg,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트북과 카메라는 포기 못하겠다. 그러니 이 부분은 내가 감내해야 할 무게였다. 9시 우체국 문이 열 때까지 마리아와 기다렸다. 십 오분 전 마리아는 테이프와 가위를 가지고 나왔다. 문이 열리기 전의 우체국 앞에서 나를 세워두고 빈 박스를 구하러 총총히 사라졌다. 한국까지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