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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말보다 더 통하는건 느낌

코치 박현진 2009. 12. 11. 18:20

2009.11.09
벨로라도-아게아 : 24km



"이봐, 아가씨. 일어나야지 않어?"
거북이 아저씨가 깨웠다. 어제 내 주위의 모든 소리는 코고는 소리였다.
참고 자느냐 배낭에서 귀마개를 꺼내느냐를 잠결에 고민하다가 귀마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 정말 카미노는 다 좋은데 이 것만큼은 견디기 어렵다.

어제 들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2일은 더 비가 올 것이며 (물론 어제와 같이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
웬만한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으며,
12킬로지점에 있는 알베르게는 1시에 문을 여는데 예상대로면 12시도 안되게 도착.
앞으로 12킬로 지점의 알베르게는 거지소굴로 유명하다는 곳. 패스요함.
그리고 약 4킬로 떨어진 지점에 그나마 괜찮은 곳이 있다고 했음.
그러니 12시부터 16킬로를 더 걸어야 하는데 역시 비바람이....

중간중간 거북이 부자와 만나는데 그 때마다 나를 걱정해주신다.
이미 생장에서의 경찰신고사건과 나의 넘치는 배낭을 보았기에 하는 걱정이다.

어제처럼 6시가 다 되어 입술 퍼렇게 들어갈까를 고민하며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베크를 보았다.
독일에서 온 그녀 3주의 휴가를 받아 왔단다.
"나는 내일까지가 끝이야. 아쉽네 내년에 또 올 수 있으면 좋겠어"
"난 20년 후에나. 그전엔 절대 오지 않을 거야."
먼저 그녀를 보내고 바에서 바게트를 하나 산 사이 버스가 떠나 버렸다.
음 역시 걸어야 하는걸까 싶은 생각은 또다시 내리는 빗줄기에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이미 지나간 버스는 또 두 시간 후에나 온다고 하여 생장 이후 오랜만에 히치 하이킹에 도전해봤다.
브루고스까지 간다는 에스파냐인이 흔쾌히 태워줬다.
오르테가 마을에서 내려 알베르게까지 4킬로는 걷기로 했다.
내리면서 작은 기념품이라도 줄까 싶어 가방을 뒤적이는데 굳이 마다하면서 떠난다.


▲ 땅은 젖고 하늘은 말갛구나. 언제 비가왔냐는듯... 


작은 마을에 바와 같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
딱 한명이 먼저 와 있었는데, 코리안 치킨 숩을 같이 먹은 폴 아저씨.
너무 반갑게 ‘올라’를 외쳐주었다. 그래 이런 게 은근한 반가움인가보다.

먼저 오면 침대 선택권이 있다. 딱 찍은 침대에 짐을 푸는데 하얀 베겟잇 사이로 까만 점을 발견.
예전 어느 알베르게의 방명록에 누군가 그려놓았던 '베드벅스'인 것이었다.
꺄악....가지고 있던 휴지를 두껍게 접어 그 넘을 눌렀다.
‘띡’ 소리와 함께 손 끝에 터지는 느낌이 끔찍했다.
오 제발...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베드벅스에 물리지 않게 해주세요.

방명록을 보니 3년 정도의 기록두께다.
많은 사연들이 적혀있었지만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매일 저녁 만들어 먹을 음식을 구상하고 매일같이 소풍가는 느낌으로 여행한다는 부부.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그들이 참 행복해보였다.
이 길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걸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내 산딸기 젤리를 기꺼이 나눠먹은 독일인 알렉산더가 도착했다.
조금의 영어도 못하는 그와 할 수 있는 대화는 오로지 바디랭귀지 뿐이다.
'밥 먹을래?' 어렵게 알아들은 그의 랭귀지에 이미 밥을 많이 먹었어, 노 쌩스라는 말이 통하지 않아,
농(non) 이라는 차가운 말 밖에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와중에 땡그란 프랑스인도 들어온다.
오 어떻게 벌써 왔냐고 걸어온 거 맞냐고 물어댄다.
그녀와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너네들 먼저 왔구나...

곧 거북이 부자도 오겠군. 또 한 번씩 놀라시겠네.
내일이면 카미노의 진짜 마지막 날이다. 
이 마을에 유일한 바이자, 레스토랑이자, 슈퍼에서 다들 모여 오늘 카미노의 마지막 파티를 해야겠다. 
 




▲ 전~혀 정상적인 단어로는 대화가 되지 않았던 알렉산더. 그의 막 그림으로 모든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순례자메뉴를 주문하는데 이런, 에스파냐어로 적은 메모지를 갖고 온다.
총 3코스에 와인과 물 빵이 포함된다는 건 알겠는데, 각 코스별로 선택하는 3가지 메뉴.
즉 총 3코스의 9가지 메뉴를 구별해낼 방도가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샘을 닮은 이 남자 처음엔 사전을 가져와서 애쓰더니
반짝 아이디어가 생각난듯 잠시만 기다리라는 느낌을 남기곤 사라진다.
곧 조그만 접시에 9가지 음식을 담아왔다. 말하자면 직접 샘플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그 생각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다.

어느새 다들 모였다. 삼일 째 같은 숙소에서 만난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후르츠 샐러드에 무엇인가 점점이 뿌려져 있다.
후추인가 살펴보니 묘한 향이 나는게 꽤나 매력적인 향신료 같다.
옆에 알렉산더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림을 그려준다.
때론 말보다 그림이 더 쉽다.
꽃의 씨앗인가 보다. You're good artist!!

축구게임기 앞에서 서성이니 한 친구가 게임 제안을 한다.
공이 5개 나오는데 4대1로 그가 이겼다. 그나마 1점은 나의 자살골이다.
푸드 보린~~ 이건 작은 축구 게임을 말하는거야. 그가 가르쳐 줬다.

아 친구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애틋해지는 이 길이 곧 그리워지겠지.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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