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센티의 아티스트데이, 북촌 게스트하우스 방황 편

코치 박현진 2013. 8. 17. 15:40


더위의 절정. 금요일 저녁부터 피서를 못간 휴양의 욕구가 최고치를 달했다.
주말은 반드시 어디 게스트하우스라도 체크인해 들어가
에어컨 시원한 방에 콕 박혀 독서삼매경이라도 빠져보고 싶었다.
그래 오늘은 아티스트 데이트의 날이다.

아티스트 데이트트는 '아티스트 웨이'(줄리아 카메론)에 나오는 개념이다.
매주 2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자신 안의 창조적인 의식과 내면의 어린 아티스트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오로지 혼자 떠나는 소풍 같은 것. 즉 미리 계획을 세워 모든 침입자들을 막는 놀이 데이트의 형태를 띈다. 아직 어린아이인 내면의 창조성을 밖으로 내놓아 마음껏 응석 부리게 하고 이야기도 들어주어야 한다.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을 기르는 기본이다.

데이트 예 -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있는 고물상에 가보기, 해변에 가기, 옛날 영화 보러 가기, 미술관에 가기, 오랫동안 시골길 걷기, 등등. 자신 안의 어린 창조성과의 데이트이니 오로지 혼자 떠나야 하는게 포인트다.

오전은 인사동 다방에서 사주를 본다.
오년 전 그냥 따라간 철학관에서 역술인 아저씨는 말했다.
'아니 걱정도 없는 사주에 순탄한 일생, 뭔 고민이 있어 돈싸들고 찾아왔대? 돈아까우니 이런데 오지마.'
일이 내 뜻대로 안될때면 '평탄한 사주, 좋아하시네!'라고 콧방귀를 뀌는데
그럴때면 그 아저씨는 용한 역술인으로 케이블 티비에 패널로 출연하는걸 나에게 들킨다.
아 믿어줘야 하나보다.

오년쯤 지났으니 한번 더 봐본다.
이번의 어르신 말에 의하면 작년은 겁나 힘든 한해를 보냈으며 앞으로 8월 7일을 기점으로 힘든건 다 지났다고.
남은 하반기는 원하는 뜻대로 다 이뤄지며 내년에는 아주 재운이 제대로 터진다는,
게다가 해외로 승승장구 하게 되는 운세라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대답을 똭.
한번 타고난 건 자꾸 볼 필요가 없겠구나.

이대로 북촌으로 가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 뒤,
광화문 일민미술관으로 달려가 정영두 아티스트의 [언어를 이용한 움직임 창작 워크숍]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순탄치 않았다. 일부 게스트 하우스는 성수기 끝물의 달달함을 맛보고 있었고,
전화하느니 그냥 북촌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갈 것 같은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굳이 내국인을 받을 이유가 없어보였으나, 굳이 나를 땡볕에 기다리라고 하고
볼일보러 갔다 한참있다 돌아온 매니저는 내일 아침 8시에 방을 비워줄거면 예약하라고 한다.
나의 느긋한 아침을, 주말 비용을 내고, 대체 내가 왜?

다시 거리로 나와 일사병을 예감하며 한옥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헤메었다.
정오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가장 뜨거울 때, 모든 영업소는 문을 닫고 청소를 하거나 단장을 한다.
용감하고 계획없는 나는 이대로 포기 할 수 없어 '한옥체험살이'라는 간판만 보이면 문을 두드렸다.
야속한 문은 그대로 닫혀있고, 인기척이 들리는 문을 두드렸다.

'아니, 아가씨가 용감해라'
반가운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싱글룸이 하나 있다고 한다.
마침 닭발을 손질 중이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7살 마장동 육고기 시장에서 내 키만큼 쌓인 닭발을 본 후
닭발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이내 어렵게 얻은 방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오는길에 내것으로 보이는 쇼윈도의 옷을 보고 혼미한 정신으로 결제까지 마치자,
한옥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휴양로망은 거품꺼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일민미술관을 보며 워크샵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