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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마지막 걸음은 나와 함께

코치 박현진 2009. 12. 14. 18:23

2009.11.11
브루고스에서 하루종일 노닐기

어제는 피곤했던 모양인지 12시에 잠이 들었고
중간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 입고 자던 스웨터를 벗느라
잠시 깨었던 것 빼고는 참 잘 잤다. 베드벅 걱정 없이 쾌적하게 잘 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또 묵는것은 불가능했고 8시부터 2시까지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동안
짐을 맏기고 부르고스 시내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말수가 적었던 한 친구가 말을 건네온다. 안토니오다.
어제 타르코프스키의 안개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야속한 친구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며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한다. 
서로 메일을 교환하고 이번 여행은 블로그에 잘 정리해 두어야겠다 생각한다.
이미 벌써 해외의 독자 하나가 생기지 않았나.

‘센티’혹은 ‘진’으로 통하는 나의 마지막을 앞으로도 계속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챙겨준다.
“진, 부엔 카미노”
“음 그건 내가 해야 할 인사 같은데. 카미노는 앞으로 너희들이 계속 가는건데.”
“인생은 어차피 길을 걷는 거자나. 네 삶이 부엔 카미노 하길 바라.”

나의 산티아고 두 번째 프로젝트를 구성함에 꼭 필요한 스페인 우표를 구입해야 했다.
짐을 붙이겠다는 몇몇 친구들과 우체국에 들렀다.
그 와중에 안토니오는 나에게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그들과 우체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런 거 잘 안하지만 오늘로서 카미노가 마지막이라 남겨두고 싶었다.



산티아고 일행과 헤어지고 이곳에서 주말까지 머무르겠다는 안토니오와 조금 걷다가 헤어지고
나는 그동안 몸살이 날 만큼 하고 싶어 했던 일들에 착수했다.

일단 아무 계획 없이 거리 싸돌아 다니기. 그 동안은 알베르게에 등록하자마자
슈퍼를 찾아 헤메느라 멍 때릴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관광객 모드로 변신해서 천천히 놀아야했다.
일단 패션부터 바꿨다. 아침 쌀쌀한 날씨에 비행기 좌석에 놓고 내린 나의 핑크 점퍼가 유난히 그리웠다.
코트를 하나 사 입었다. 50유로 정도 했는데 실용적이고 꽤 따뜻한 것이 오래도록 입을 것 같다. 

볕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하면서 샌드위치 먹기. 이건 내 로망이다.
그것도 어제 만든 센티 스타일 햄 양파 샌드위치 아 드디어 여유롭게 로망을 실현하는구나.
또 밖이 환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 찐하게 들이켜며 책읽기.
나의 십자가에 무게를 더한 책 한권. 가져오길 잘했다.
시니컬한 문체가 어찌나 재미나던지 앉은자리에서 후딱 70페이지를 읽어버렸다.

브루고스에 발을 디딜 때부터 웅장하게 솟은 성당 관람하기.
어제는 너무 피곤하여 제대로 못 둘러볼 것 같아서 오늘로 미뤘다.
종교의 내용과 상징하는 바는 모르겠지만, 그 규모와 분위기는 봐볼만 하다.
순례자 여권을 내면 1유로 더 저렴하다.
12세기에 지어졌다는데 이곳 건축의 힘은 위대하다. 핸드폰이 울린다.
그동안 순례중에는 배낭 속에 핸드폰을 쳐 박아 두고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해외로밍 안내 멘트를 듣고서도 전화벨을 울리는걸 보면 받아야 할 것 같다. 회사다.
"머하세요? 거기 몇 시에요?"
"왜요? 아 왜요???"
"그냥 살아있나 궁금해서요. 우리 술 마셔요~~ 여긴 아홉시~~요새 일 겁나 많아요. 빨랑 와요~~~"

2-3일에 한번은 인터넷을 할 줄 알았는데 센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으니
술 자시다가 슬쩍 궁금했나보다.

인터넷이고 핸드폰이고 통신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알베르게에 설치된 인터넷에 한글 지원이 안 되면, 이건 거의 환장이다.
어떤 알베르게는 한국어 인코딩이 지원되지 않아 외계어만 보다 끝내 메일확인을 포기 한 날도 있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동안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나보다. 모국어로 말하는 것에 들 뜬 듯했고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운을 빌어줬다.

예전부터 찜해둔 조개모형 앙증맞은 목걸이를 기념품삼아 구입했다.
조개는 수호를 의미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의 순례길에 수호를 비는 상징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다.
단순히 실에 엮은 작은 금속 조각일 뿐이지만 이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참 좋아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렇게 놀다보니 2시가 훌쩍이다.
어깨에 배낭을 메다가 주저앉을 만큼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나서
그제서야 바르셀로나까지 버스로 얼마나 걸리는지를 안 물어 본 것이 생각났다.
호스피탈로 말로는 약 8시간이란다.
헉...그럼 나는 밤에나 도착하는 거야?
그냥 하루 밤 호텔에서 더 묵을까? 일단 터미널로 갔다.
오전 시간대 버스는 다 가고 11:45 버스가 남았다. 내일 아침 8시에나 도착한다.
이럴 땐 야간 버스가 최고다. 비용과 시간 둘 다 아낄 수 있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 버스 대신 야간 버스를 예매했다.

이 모두 즉흥적이다. 여기와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한인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내일 예약을 잡았다.
비수기니깐 가능한 일이다.
코인 라커에 산더미 같은 배낭을 쑤셔 넣고 광장 한복판을 거닐다가 안토니오를 또 만났다.


▲ 걱정마, 나 좋은 사람이라니까.



"진, 어떻게 된 거야?"
"응, 계획 없이 노닐다가 밤에 바르셀로나로 갈려고."
"그렇구나, 타파스 먹어봤어?"
"아니 또띠아만 엄청 먹어댔어. 타파스 맛있어? 그거 먹어보고 싶다."

타파스는 작은 접시를 뜻하는데 조그만  음식들을 여러개 놓고 먹는 것을 뜻한다.
스시에 다양한 생선을 올려먹듯,
김밥에 온갖 재료들을 넣어먹듯,
이들도 그들의 주식인 바게트에 여러 가지 토핑들을 올려먹는구나 라며 내멋대로 생각해본다.



그렇게 간단하게 먹고 나오는데 안토니오가 급 제안을 한다.
너 피곤하지 않으면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갈까 하는데... 산솔.
브루고스 시내가 다 내다 보이는 곳이다. 손짓 발짓, 노트에 적어가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망설이는 것 같이 보였는지 그가 부연설명을 한다.
"걱정마, 나 굿 맨이야."
"미안, 나 좀 피곤해. 그리고 오늘밤은 버스에서 자야해서 힘들거 같아. 이만 헤어져야겠어.
타파스는 맛있었고 고마워. 이메일로 다시 만나자."

하루 동안 그와 뺨 인사를 세 번이나 했다.

오늘 하루는 한 마을에 자리 잡고 앉아 고스란히 시간을 보냈다.
상점이 열리는 시간, 시에스타 시간의 시작과 끝, 그리고 마무리까지 같이 했다.
그동안 순례를 마치고 진입한 마을의 쥐죽은 듯한 시간의 마을만이 맞아줬는데...  
자평하기로 꽤 성과있는 날이다.
하루를 연장하지 않아도 되고 야간버스를 타보는 경험도 해보고 숙박비도 아끼고...

그리고 지금 해가 지고 다시 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가로등엔 불이 켜지고,
식료품점, 기념품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바에도 다시금 복작복작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카페에 앉아 나의 또 다른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넷북으로 일기 쓰기.
역시 내 옆에는 카페 콘 라체 그랑데가 모락모락 따뜻한 향기를 퍼트리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흐를 것 같다.

마지막 순례자 코스를 즐기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한인 민박의 한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길로 뻗은 골목 중 한곳에 레스토랑을 봐둔 곳이 있다.
포도주 한 병이 같이 나왔다. 혼자서 홀짝홀짝 어느새 치사량을 넘고 말았다.
홀짝거리는 사이 어느새 반병이나 줄어있었다.
마실 때 기분은 좋았으나 버스에서 좀 괴로워해야 했다.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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