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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이것이 진짜 여행이렸다

코치 박현진 2009. 11. 30. 18:02

2009.10.30
수비리-팜플로냐 : 21km


드디어 처음 제대로 걸어보는 날이다.
공립 알베르게 대산 10유로나 하는 사설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만족도는 높았다.



토마토 한 알과 카페 솔로 그랑데 한 잔으로 가볍게 시작.
아침에는 이슬에 젖기 때문에 바람막이용 점퍼를 입어주어야 한다.
핑크 자켓은 항공좌석에서 놓고 내리고 내게 남은 유일한 바람막이용 점퍼는 여박 점퍼.
주황색 옷은 어디에다 내어놓아도 튄다. 산에서 실종되어도 가장먼저 발견될듯.
인적 없는 숲길, 아침이슬에 옷깃을 스키며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따라온다.
야옹대는 폼이 영 애태우는 걸 보니 녀석이 오랫동안 굶었던 것 같다.
갖고 있던 바게트 빵을 좀 찢어서 던져 주었다.

이틀 전 사두고 거의 잊었던 바게트는 무지하게 유용했다.
사과 한 쪽과 바게트 빵 하나 가방에 꽂고 다니면 그것만큼 든든한 에너지원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팜플로냐 까지 가는 길 중간에 아레아 마을 참
숲길을 두어 시간 걷고 나면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사과 반쪽이나, 바게트 한 조각씩을 먹으며 쉬어간다.
12시가 넘어가면 바람막이 옷을 벗을 차례다.
한낮의 열기만으로도 여름을 능가하는 더위가 오기 때문.
 
오늘 걸은 길은 숲길, 대도시, 또 숲길의 패턴이다.
오늘의 목적지 팜플로냐는 발바닥에 불이 붙을 무렵 나타난다.
(팜플로냐가 나타났다는것이 아니다. 표/지/판 이 나타났다는 의미임.)

성벽을 건너 들어서자 중세의 영화세트장 같은 곳이 나온다. (게다가 공사중이다.)
이곳은  버스가 노선별로 다니는 정도로 거대 도시다.




알베르게를 겨우 찾아 침대배정을 받았다.
불이 붙어버린 발바닥을 어서 달래주고 싶다.
잠시 숨을 돌리고 동네 산책을 나간다. 활기찬 도시다.
나름대로 명품숍들도 즐비하고
할로윈 축제를 마치고 나온 듯한 어린이들, 활기찬 마을.

저녁은 라면 근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는데 신라면도 판매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1.7유로쯤 했던 것 같다. 계란하고 소시지 사서 라면에 넣어먹다.
역시 한국인은 매운맛이야...
마리아 알베르게 빨레는 무료이고 건조를 할 경우 1유로가 든다.
어제 사설 알베르게의 6.5유로에 풀서비스에 비하면 셀프로 1유로 할 만하다.
인터넷 1유로에 20분. 한글 기능 안됨.
열심히 영문 메일을 쓰고 있는데 1분 카운터 들어가고 미처 돈을 넣기도 전에 종료.
아아...다시 영타로 문장을 째내야 한단 말이다. 다시 써야 했다.




라면먹고 즐거운 위장을 소화시킬겸 마을 산책을 나왔다.
광장. 도시의 중심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중심.
성당을 중심으로 집이 들어서고 그리고 가운데는 광장이 생긴다.
거기서 사람들은 모이고 카페가 들어서고 의자들을 하나같이 광장을 향해 돌려놓았다.
처음 맞이하는 대도시라 무척 낭만적이라 생각한다.

건너 테이블에 앉은 '샤이보이'를 만나다.
생장을 오는 열차를 같이 타고 왔는데 몇 번 눈에 익었다고 이젠 손도 흔든다.
잠시 머뭇하더니 이쪽 자리로 온다.

무릎부상으로 알베르게 대신 호텔에서 하루 더 쉬어가기로 하고 저녁에 맥주 한잔 마시러 나왔다.
2개의 바를 운영하고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기에 특별히 돌아갈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딸이 보고 싶어서 두 달 안에는 돌아갈 생각이란다.
"아니, 샤이보이, 너한테  딸이 있어?"
"응 열 아홉살이야"
"와~~~나인(nine)? 나인틴(nineteen)? 너 20대 아니었어?"
"나인틴!!"
수줍은 눈웃음을 짓던 샤이보이는 40대 장년이었던 것이었다.

그도 어김없이 또 물어온다.
"너 여기 왜 왔니?"
"글쎄..나는 그냥 오고싶어서. 근데 넌 왜 왔니?"
"피레네 넘을 때 생각했어. 대체 나 지금 머하는거지?"
피레네를 넘어보지 못한 나는 그저 씁씁히 웃어넘길 뿐이다.

공립 알베르게 엄격한 규율에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10시면 문을 닫는다.
그가 한 잔 산다는 것을 아쉽게도 마다해야만 한다.
스페인. 이 낫선 곳 낫선 마을에서 그냥 편하게 즐거워하고 있는 순간 좋다.
짧기만 한 영어도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말 다하기도 처음이고.
이것이 진정 여행이렸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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