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차라리 행운이었다 by 신창연

코치 박현진 2012. 7. 20. 23:14

이런 정신의 사쵸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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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식구가 단칸 방에서 살 만큼의 처절한 가난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그 이후 어떤 잠자리도 내게는 왕실이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보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술 때문에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갈 나이에 고아같은 사회 생활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사람은 배워야 올라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대학에 떨어진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나는 공부로 승부할 머리는 아니란 것을 빨리 깨우쳤다.

몸이 약한 비실이는 차라리 행운이었다.
몸을 대신할 악을 키웠다.

급여가 낮은 회사 생활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급여만으로는 평생 설계가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상사를 잘못 만난 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나의 십년 후 자화상은 그와 정 반대의 그림이었다.

회사에서 짤린 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내 용기만으로 자의적인 회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창업 밑천이 없었다는 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돈 대신 열정과  머리로 덤볐다.

회사의 잘못된 구조들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내 회사를 창업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 지 길이 보였다.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인재가 주변에 없다는 건 차라리 행운이었다.
몸과 열정과 정성만이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전부였다.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에 회사 친구들과 함께 낮과 밤을 같이 했다.

사랑의 시련을 당한 건 차라리 잘 행운이었다.
그 때마다 새로운 천국의 여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라이콤의 부도는 차라리 행운이었다.
돈 다발에 묻힌 내 꼴의 추잡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트라이콤과 결별과 에프아이투어의 상장 폐지는 차라리 행운이었다.
드라마 같은 사업의 속성을 이 시기에 완벽하게 다 배웠다.

바닥까지 떨어진 회사의 운명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떠나야할 사람과 남아야할 사람들의 인적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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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내 인생은 행운만 계속될 것임을 백프로 확신한다.